2016년 4월 20일 수요일

티맥스OS를 보면서....



티맥스OS를 보면서....



이거 전형적인 '한국형 기업 문화'의 형태라는건 다들 잘 아실것 같아요.
경험적으로 보면 회사 내부 사정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 대체로 이렇게 흘러가던데...


1단계

경영진이 매출/성과 가시화에 대한 압박으로 불가능한 목표 + 무리한 일정을 요구한다.

2단계
말솜씨가 좀 없고 진짜 핵심적인 엔지니어가 중역에게 '이런식으로는 안됩니다' 했다가 엄청 모욕만 받고 찌그러진다.  사장은 웬 어리버리한 듣보잡이 되도 않은 소리하냐고 중역에게 질책한다(사장은 누가 진짜 핵심 개발자인지 잘 모른다).

3단계
엔지니어링 능력은 좀 떨어지지만 사내정치에 능한 타입의 PM이 핵심 엔지니어를 왕따시킨다.

4단계
이때 2가지 경우로 분기가 됩니다.

    핵심 엔지니어가 관둔다.
    핵심 엔지니어가 자신의 수명과 프로젝트를 맞바꾸기고 결심하고 스팀팩을 맞고 어떻게든 계속한다.
       
5단계
핵심 엔지니어가 관뒀을 경우에는, 그대로 프로젝트가 망한다.  계속 이어지는 것 처럼 보여도 결국 망하게 되어 있다.
핵심 엔지니어가 어떻게든 구현은 해낸다.  물론 올바른 소프트웨어공학을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구현하는데만 급급할 수 밖에 없어서, 버그를 예측할 수 없고 또 버그가 나와도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곤란한 경우가 많다.  화면이 나간다던가, 블루스크린이 뜬다던가 하는 눈에 확 띄는 버그가 나오게 되면 사내 품평회에서 사장 및 중역들은 핵심 개발자를 불러다가 실력이 없다는 둥 별 모욕을 다 주고 회의식 밖으로 쫒아보낸다.  PM은 핵심 개발자에게 모든 책임을 다 떠넘긴다.

6단계
경영진은 모든 것을 '엔지니어의 실력 탓'으로 돌리고, 이런 어리버리한 한 사람의 개발자에게 핵심적인 기술이 종속되는 상황은 경영학적으로 안 좋으니, 핵심 개발자가 아키텍쳐를 설계할 수 있는 권한을 다 빼앗고, 여러 명을 투입하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믿는다.

7단계
안간힘을 쓰면서 아키텍쳐의 '우아함'을 지켜나가던 핵심개발자의 설계권한이 무시되었으므로, 그보다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 저급 개발자들이 여러명 달라붙어 소위 '입개발'을 시전한다.  아키텍쳐는 결국 누더기가 되고, 이걸 감당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입개발자들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하나 둘 조용히 퇴사한다.  물론 퇴사 이유는 다른 핑계를 댄다.

8단계 : 亡




보통 중소기업 레벨에서는 한 사람의 핵심 엔지니어에 의해 특정 프로젝트/사업의 성패가 완전히 종속되는 경우가 있죠.
이게 경영적으로는 분명 리스크 요인은 맞는데, 이걸 피하려면 제대로 된 개발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밟아나가야 되는데, 과정보다 결과만 중시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 때문에, 이런 상황을 경영진 스스로 자초하면서 그 탓을 핵심 엔지니어에게 덮어씌우는 상황이 자주 연출됩니다.

'핵심 엔지니어'는 대체로 학구적 성향, 말솜씨가 좀 떨어지고, 사교성이 조금 덜 한 경우가 왕왕 있더군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 나오는 엘런 튜링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될 듯.)


물론 요즘은 엔지니어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엔지니어링 능력 자체 보다는 사회적 스킬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매니지먼트 능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긴 합니다만...
이게 과연 정답일지는 의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여러 분야에 모두 깊게 잘 하는 완벽한 엔지니어'는 잘 없습니다.
(사실 내 관점에서는 그런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습니다.)


특히 기술적으로 도전적인 과제의 경우에는, 엔지니어링 자체에 아주 깊게 탐험해 들어가는 천재 - 사회적 멍청이형의 엔지니어가 있어야 진척이 발생하는 경우를 자주 봤습니다.
'입개발'하는 사람들만 모아놔서는 아무것도 안되죠.  그런 타입의 엔지니어들은 자기가 뭘 신기술을 도전한다던가, 아주 어려운 것을 온전히 자기 어깨에 모든 책임을 지고 몸을 던지지 않거든요.
남이 구현해 놓은 것을 보고 품평이나 하는 스타일이 많습니다.



아무튼, 티맥스의 내부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프로젝트가 저따위로 기획/진행되고 완성도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일정이 잡혀진 발표를 강행해 버리는 것은 티맥스 회사의 경영진의 자질에서 모든 문제가 비롯된다고 봅니다.
모르긴 몰라도, 발표회장에서 컴퓨터가 얼어버리거나 다운되는 버그의 원인을 제공한 코드를 작성한, 누군지 모를 그 '핵심 엔지니어'가 그 회사 안에서 받게 될 모욕과 뒷담화를 상상하게 되네요.

'우리 회사는 쿨하니까 기술적으로 실수해도 왕따 같은거 안 시켜'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국 기업 문화의 어두운 측면을 외면하는 부류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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